한겨레

퍼엉 “후원금 13만 달러라니…‘펑’ 터질 줄 상상도 못했죠”

지난 달 한국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이 국제적인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미국 크라우드펀딩업체인 킥스타터에서 한달 만에 13만 달러의 후원금을 끌어들이면서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인기 3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애초 1만달러 목표는 2시간 만에 모금이 끝났고, 한달 모금 기간이 끝났을 때는 목표의 13배, 13만달러에 이르렀다. 후원자들은 주로 영미권이지만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등의 유럽권과, 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권까지 전세계 70여개 나라 1800여명에 이른다. 후원자들은 퍼엉의 작품을 담은 아트북, 엽서집, 패브릭 포스터 등을 돌려 받게 된다.

퍼엉의 본명은 박다미(24·사진). 한예종 영상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미술학도다.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인 그라폴리오에 ‘사랑이란’ 제목 아래 올린 124개 작품이 포트폴리오의 전부인 신인작가다. 하지만 그가 작품을 올리는 화·목요일을 기다리는 팬층이 형성되고, 결혼식 청첩장으로 작품을 사용하고 싶다, 아들의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하고 싶다는 등 여러나라의 언어로 된 댓글이 줄을 잇는 스타 작가다. 류근 시인의 요청으로 산문집 <싸나희 순정>에 삽화작가로 참여한 것도 그 여파다. 퍼엉은 어떤 인물이고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4일 어렵게 연결이 된 작가는 “이렇게 터질 줄 상상도 못했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미국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올려1만 달러 목표의 13배 모아 화제70여개국 1800명 후원 ‘스타 작가’한예종 애니메이션 재학중 ‘신인’2013년부터 네이버 그라폴리오 올려남친과의 일상 담은 ‘사랑이란’ 인기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지만 특출나게 그림을 잘 그린 편이 아니었어요. 교수님들이 그리라면 그리고, 생각하라면 생각하고, 챙겨주시는 외주를 거절 못하고 무식하게 소화해내느라 밤새 그림 그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막상 저를 위한 그림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이게 진짜 행복한 건가 의문도 들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저를 위한 그림을 한 장 이상 그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사랑이란’의 소재는 2년째 사귀고 있는 ‘안경 쓴 키다리’ 남친과의 소소한 일상생활이다. 남친한테 ‘뿅’ 나타나 두 팔로 하트를 그리는 자신, 계단참에 앉아 함께 책을 읽다 나누는 뽀뽀, 쇼핑 뒤 소낙비를 피해 거리를 달리던 순간, 그림 그릴 때 가만히 다가와 지켜보는 남친 등. 사랑에 빠진 연인이면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알콩달콩 사연들이다. 그런 순간들을 노랑색이 섞인 수채화풍의 갈색톤으로 표현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소재가 많은 공감을 부른 것 같아요. 누구나 한번쯤 사랑을 했을 터이고, 누구나 한번쯤 사랑을 하고 싶잖아요. 나이든 이한테는 아련한 추억을 환기시키고, 젊은이한테는 로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걸 감정선을 건드리는 장면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제 성격 탓인 것 같아요. 남들보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슬플 때는 심하게 앓고 좋은 일이면 두배로 행복해해요. 예를 들어,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릴 때 바닥에 부딛쳐 나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고 그 순간에 남친과 눈이 마주칠 때의 상황 등에 굉장히 민감해요. 스케치북 앞에 서면 그런, 작은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작품의 남다름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품은 점이다. 어떤 상황을 그리되 넓은 배경을 포함해 시간과 장소 등 전후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은, 또는 광각 새의 눈으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작가는 스토리와 카메라 워크가 포함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것과, 건축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자기를 오랫동안 스토킹한 게 아니냐’고 말하는 팬도 있을 정도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반응이 좋아요. 평면적인 그림에 익숙한 그들한테 이야기를 품은 제 그림이 신기한가 봐요. 일반인한테 서양화는 어느 정도 해설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제 그림은 제목이나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어요. 뜻을 포함하는 한국화 전통이 은연 중 반영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거기에 한국 드라마가 깔아놓은 한류 신드롬이라는 멍석이 한몫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퍼엉은 “왜 여자만 우느냐, 왜 여자를 약한 모습으로 그리느냐”는 외국 팬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며 “그게 동서양의 차이가 아니겠느냐”면서 “아무래도 남친을 한번 울려야겠다”고 했다.

퍼엉의 인기는 작품이 반이라면 인터넷과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의 덕이 반이다. 2010년 그라폴리오 출범 때 올린 작품에 대한 반응은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2013년 그라폴리오가 네이버에 인수되어 작품이 7개 언어로 서비스 되고 메인화면에 노출되면서 불이 붙었다. 매주 이용자가 40만명을 넘어서고 페이지뷰가 200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케팅용으로 만든 동영상은 100만뷰를 넘어섰다. 페이스북 팔로어도 13만명에 이르는데, 미국이 1만3000명으로 가장 많고 상위 11개 나라 이용자가 평균 6000~7000명에 이른다. 그라폴리오의 노장수 티에프 팀장은 네이버를 통해서 글로벌한 만남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제 그림을 보면서 팬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퍼엉’ 터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남친과 설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서, 그 감정이 유지되는 한 그림은 계속될 거라고 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034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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